겨울 제주도(5-1)

코로나로 미뤄왔던 휴가를 떠납니다. 여름에만 다녀와서 그런지 제주도에 대한 기억은 썩 유쾌하지 않습니다. 덥고, 번잡하고, 비싸고…그러나 코로나 상황이라 제주도는 서울에서 떠날 수 있는 가장 먼 곳이라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여행은 멀리 떠나는 것이다’라는 강박이 생겨 물리적 거리가 여행의 만족도를 좌우하게 되었습니다. 멀리 가야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풍광과 마주하게 되고 그로 인해 둔해진 오감이 자극받는…

북한산 운무

간간히 내리던 비도 그치고 공기도 청량하여 새벽녁 서둘러 북한산에 오릅니다. 나무 잎과 등산로는 아직 물기를 머금고 있고 습도도 조금 높아 후덥지근 하지만 보상이라도 하듯 간간히 운무가 피워오르더니 비봉에 다다랐을 즈음 절정에 이릅니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봉우리 사이로 운무만이 자유로이 피워오르고 또 바람에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산의 모습에 변화를 줍니다. 늘 같은 듯 하지만 다르고 또…

5월

피고 지고 또 피지 못하는 것은 인생 뿐이라 대자연의 무한한 반복성에 질릴 법도 하지만 어두운 긴 터널 끝에 광명한 빛을 맞이하는 어린 아이처럼 늘 설레임으로 이 계절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소망하는 것처럼 5월의 색과 바람과 향기가 심연에 갇힌 슬픈 기억의 몇 타래를 겉어낼 수 있을까요?

대청호의 새벽

아주 가끔은 치밀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잔잔한 호수가 생각나 무작정, 즉흥적으로 나선 곳인데, 대청호 도착 즈음 카메라와 삼각대로 중무장한 한 무리의 사진 동호인들과 우연히 조우하여 그들이 향하는 곳으로 덩달아 따라 나섭니다. 역시 멋진 스팟에 다다르고 기대 이상의 풍경은 잠을 설치고 분주히 먼거리를 달린 보상으로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동호회 명칭 등도 모르지만 의도치…

가을 설악산

지난 해에 이어 올해 가을도 어김없이 설악산에 오릅니다. 이번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설악동 소공원에서 출발하여 비선대-마등령삼거리-공룡능선-신선대-무너미고개-희운각대피소(1박)-대청봉-무너미고개-천불동계곡-비선대-설악동 소공원 順. 사실 소공원까지 자가운전으로 이동하는 경우는 들머리와 날머리가 같아야 하므로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첫째 날 오후 늦게부터 비가 꽤 내렸고 공룡능선을 지나 1박 장소인 희운각대피소 도착하기까지 카메라를 포함한 11.5kg의 배낭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일찍 어두워진데다가 등산로까지 비로 미끄러워…

산 길

산 속으로 이어진 길에 나를 맡기면 나란 존재는 길 어귀에 남겨지고 나 아닌 누군가가 마냥 이 길을 걷는 듯 합니다.   청량한 바람이 얼굴에 스치우고 감미로운 데시벨의 소음과 하늘거리는 나뭇잎의 손짓 사이 따사로운 햇살은 등 뒤로 쏟아지고…   희게 비워진 영혼, 나는 누군가가 되어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북한산에 오르다.

가끔 높은 곳에 올라 시력이 다다를 수 있는 한계를 살피곤 합니다. 운좋은 날, 먼지없는 청명한 날에는 하늘과 땅의 경계까지 이르는 호사를 누립니다. 우리 눈을 가리우는 것이 어디 매연과 미세먼지 뿐 일까요. 신기루같은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쫓는 일 대신 가끔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별을 느껴보는 여유와 행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