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상으로는 사계절중 가장 빠르게 지나가는 계절이 가을이고 가을중에서도 단풍시즌 만큼 짧은 시기가 없을 듯 합니다. 4/4분기는 올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이면서도 내년을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하여 몸도 마음도 분주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설악산 산행의 D데이인 10월 27일도 단풍시즌으로는 조금 늦은 감이 있고, 단풍철의 설악산은 등산객으로 인산인해가 되기에 피해야 한다는 여론, 더더군다나 주말은 고려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지배적이나, 인생의 생사를 나눌 정도의 중요한 결정이 아니라면 좋을 지, 나쁠 지는 경험해 봐야 아는 것이므로 고민없이 실행에 옮깁니다.
26일 금요일 밤 12시 지나 출발하여 설악소공원 근방(차는 켄싱턴호텔에 주차)에 도착했을 때가 3시 지나서였고 간단히 차에서 요기를 하고 서둘러 등산을 시작합니다. 도착 당시 바람은 무자비하게 불어대고 기상청예보에 의하면 산정상이 영하 5~6도라 하는데, 산 어귀도 체감기온은 영하를 밑도는 듯 합니다.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하늘의 별은 영롱하고, 군데군데 헤드렌턴을 밝히며 여러 무리의 등산객들은 분주한 발걸음 속에 간간히 대화를 나누며 설악산 산행이 시작됩니다.
여러 등산객에 섞여 산을 오르다보니 ‘왜 위험하게 혼자서 등산을 가느냐?’는 마눌님의 타박이 생각납니다. 사방이 어둡고 매서운 바람 몰아치는 이 새벽, 이 험한 산 기슭에서도 혼자일 수 없다는 점이 아이러니합니다.
당일치기 산행이므로 코스는 설악동 소공원 출발-와선대-비선대-마등령-공룡능선-신선대-무너미고개-천당폭포-양폭포-양폭대피소-비선대-와선대-설악동 소공원 원점회귀 순으로 코스를 정하였으며, 단풍이 기대되는 천불동계곡(천당폭포~와선대)도 포함하였습니다. 전체 등반거리는 19.3km, 소요시간은 11시간 30분 정도로 당일로는 만만치 않은 거리이며 7개의 크고 작은 산으로 연결된 공룡능선을 통과하는 것이 많은 체력적 부담을 줄 수 있는 코스이기도 합니다. 또한 기온변화와 바람이 강하여 여분의 방한복을 준비할 필요가 있고 스틱을 휴대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헤드랜턴에 의지하며 앞만 보고 산행한지 약 3시간만에 여명과 함께 날이 밝아 오며 비로소 공룡능선의 윤곽이 서서히 나타납니다. 산은 보는 방향, 위치에 따라 그 모양과 느낌이 다릅니다. 이 지점에서 보는 산의 모습은 다른 지점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라 현재의 자리에서 산의 모습을 살피며 즐길 필요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빛이 내리며 황홀한 광경을 연출합니다.
단풍은 말라 간신히 메달려 있고 주위에는 얼마전 내렸던 눈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공룡능선은 마등령에서 희운각대피소까지의 약 7개의 크고 작은 산으로 구성된 능선을 말하며 공룡능선을 등반하는 것은 뾰족한 정상을 가로지르는 것은 아니고 정상 주위를 돌며 능선으로 이동하는 것이지만 워낙 험하고 높낮이가 극심하여 밧줄에 의지하여야 이동이 가능한 구간이 제법 있습니다.
공룡능선의 바람은 악명높고 매우 인상적입니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바람이 거의 쉴 새없이 불어대기에 흔들린 사진이 많아지고 한 컷을 담을 것을 세 컷이상 담는 수고가 있고 결국 등반시간의 허비로 이어집니다. 바람이 지나는 자리의 나무들은 바람이 지나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고 가지 또한 바람을 정면으로 맞서기 보다는 반대쪽으로 뻗어내며 나름의 생존을 합니다.
큰 돌 사이에 둥근 작은 돌이 위치하게된 연유가 무엇인지 또 언제까지 위태해 보이는 저 모양을 유지 할 수 있을 지 궁금해집니다.
왜 ‘공룡능선’이라 불리워졌는 지에 대한 해답은 산의 모습에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철갑을 두른 저 등가죽이 움직일 것 같은 형세입니다.
험란한 공룡능선을 마치고 이정표 앞에서 보니 시간은 오후 1시이고 설악동 소공원으로 부터 9시간 40분, 마등령삼거리로 부터 약 6시간 가량 소요되었습니다. 대용식을 먹는 시간은 채 20분도 걸리지 않은 반면 사진찍는 것에 의외로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습니다.
천불동계곡에 들어서면서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과 단풍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천당폭포
양폭포
양폭대피소
비선대
하산을 마치니 오후 5시 14분, 총 14시간 소요되었습니다. 귀경할 일이 꿈만같고 고단하지만 웅장하고 기묘한 공룡능선이 주는 감동에 행복한 하루이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