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묵을 숙소는 제주공항과 멀지 않은 아이진호텔 입니다. 둘째 날, 일찍 일어나 한라산 등반을 시작합니다. 한라산 등반을 위해서는 한라산국립공원 탐방로 예약시스템에 하루전에 예약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백록담을 볼 수 있는 코스는 관음사코스와 성판악코스가 있습니다. 성판악코스는 길지만 오르는 길이 편하고 관음사코스는 짧은 대신 가파른 경사를 견뎌야 합니다. 들머리와 날머리는 모두 관음사 탐방로로 정했는데 성판악-관음사, 관음사-성판악으로 하는 것이 볼거리가 많아져 등산의 묘미가 크지만 원점으로 회귀하지 않게되면 하산후 택시를 타고 주차한 곳으로 이동하는 불편이 있고 만약 택시가 없게되면 낭패를 보는 것이라… 그러나 하산하고 보니 택시 몇 대가 등산객을 태울 요량으로 대기하고 있어 기우였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관음사 코스
성판악 코스
겨울에는 06시 부터 등반이 가능하고 안전을 위해 정오까지 1,500미터 고지 삼각봉대피소(성판악코스는 진달래밭)까지 도착해야 나머지 정상까지의 등반이 허용됩니다. 헤드랜턴을 의지하며 칠흑같은 산속으로 등산로만 살피며 오릅니다. 그런데 날이 밝아도 짙은 안개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산세와 비경을 보며 등산하는 것이 여전히 어렵습니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견딘다’는 주목 군락을 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기에…
정상에 올랐지만 짙은 구름으로 인해 백록담은 볼 수 없고…무한한 에너지로 구름과 안개를 휘몰아 가는 세찬 바람이 지나는 찰라에 커튼 젖혀지듯 열려진 틈새로 쪽 빛 하늘을 잠시짬간 엿보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남는 것은 생존을 걱정해야 될 정도의 추위와 몸 가누기 힘든 바람, 허기 뿐입니다.
백록담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자 긴 줄이 늘어섭니다. 힘들게 오르는 여정의 피로감과 필연적인 하산길이 남아있고, 체감기온 영하 15도의 혹한이 온 몸을 휘감지만 정상에 올라 선 사람들의 표정 만큼은 모두 밝고 행복해 보입니다. 하기야 한 평생 몇 번이나 이 산에 오르게 될까요? 정상에 선 순간 만큼은 어떻게 해서든지 행복해야만 하는 인생사의 사건인 셈입니다. 현재에 충실한 것 만큼 실리있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오를 때는 안개로 볼 수 없었던 삼각봉이 비로소 보입니다. 인근에 삼각봉대피소가 있는데 이 곳에서 정상까지는 1시간 30분 남짓이 소요되므로 겨울에는 삼각봉대피소에서 추위를 피하며 요기를 해결하고 정상에 오르는 것이 좋습니다. 대개 등산객의 고정관념에는 정상까지 내리 오르고 요기는 정상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산에 따라서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한라산 정상에서는 바람과 추위를 견뎌가며 불편한 자리에서 힘들게 요기를 해결해야 하기에 실내에 테이블도 있어서 자리만 있다면 삼각봉대피소가 제격입니다.
하산이 마쳐질 무렵에야 푸른 하늘이 시원스럽게 보입니다. 한라산 정상에서 이와 같아야 했는데 다시 오를 수도 없고… 인생은 이러한 면이 있습니다. 계획한 대로 딱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남거나 부족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지요. 가위바위보를 해도 한 판으로는 아쉬움이 남기에 결국 삼세판까지 해야하고 그래야 모두가 결과에 수긍하는 것 처럼, 한라산도 최소한 세 번은 올라야 백록담의 위용을 확인해 볼 가능성이 열리고 설령 못 본다 한들 늘 그러한 것이려니 하며 아쉬움을 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