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상계동 104번지 마을입니다. 어릴적 흔한 풍경들이 이제는 ‘달동네’라는 표현으로 구별되어 불리어집니다. 오늘이 2013년 8월 18일 인데 이 곳의 시간은 과거의 어느 특정시점에 멈춰져 있는 듯 합니다.
팔을 뻗으면 인생의 희노애락과 고단함이 손 끝에 금방이라도 묻어 날 것 같은 곳, 마을은 점점 피폐해져 가나 마땅히 이주할 곳이 없는 분들에게는 유일한 안식처가 되는 곳, 유난히 더운 여름, 슬레트와 천막으로 얼기설기 덮어놓은 지붕 밑으로 뜨거운 열기가 응축되어 쌓일 것 같은 이 곳도 조만간 재개발되어 거대한 아파트 군락으로 탈바꿈하겠지요. 산천은 유구하지 않으며 인걸 마저도 간 데 없고 결국 사진속의 기록으로만 남을 곳입니다.
(카메라 및 렌즈 : 라이카 M9 & Summilux-M 35mm f/1.4 ASPH)
더위 때문인지 인적이 드물고 고추말리는 풍경과 널린 빨래를 통해서 인적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경사진 곳을 한참을 올라와도 또 경사가 보입니다. 주로 거주하는 분들이 연로하신 분들인데 이 곳까지 어찌 오르내리나 싶습니다.
시멘트가 갈라져 흙이 들어난 곳에는 잡풀들이 무성하고 누군가 심어 놓은 해바라기와 호박넝쿨도 보입니다.
이 곳의 귀한 재산(?)은 의외로 프로판가스통입니다. 노출된 가스통을 훔쳐가는 일도 생겨서 간혹 가스통에 자물쇠를 채워 놓기도 하고 주소를 적어 놓기도 합니다.
전봇대의 복잡한 전선줄이 이 곳의 고민들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조용한 곳에 인기척이 들리자 개 서너마리가 짖으며 골목을 무섭게 달려 오지만 이내 곧 친해집니다. 외견상 버려진 개 같기도 하고 키우는 개 같기도 하고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곳으로 이주한 집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고 철문은 녹슬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벽에 걸어 놓은 온도계는 31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비켜가면 좋으련만 더위는 이 곳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좁고 긴 골목길을 지나가다 보면 작은 창문 틈으로 TV소리와 대화 오가는 소리가 간간히 들리기도 합니다.
강렬한 민트색으로 벽을 장식하여 생동감을 갖게 한 곳도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정성을 기울여 벽에 그림을 그려 놓기도 하였습니다.
낮은 집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가 인상적입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간에 지척을 사이에 두고 판이한 두 종류의 삶이 명확하게 대비되고 있습니다.
한 참을 걸어 내려오다 보면 마을이 끝날 부분에 이르러 마치 푯말 처럼 꽃 그림이 새로운 경계를 알리고 있습니다.